2008년 9월 8일 월요일

덴마크 파로에 섬의 연례 행사



매년 덴마크의 파로에 섬에서는 빨갛게 물든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축제죠. 하지만 이 행사는 시카고에서 매년 성패트릭 데이를 기념해서 시카고 강을 녹색으로 물들이는 것과는 많이 달라요. 둘 다 생분해되는 천연염료를 쓴다는 점은 같다고 해야할까? 저 빨간 색의 염료는 다름 아닌 들쇠고래(Pilot Whale)의 피거든요. 파로에 섬 거주민들은 1,000년 이상이나 들쇠고래를 주요한 식량원으로 써 온 바이킹의 후손들입니다. 여름 동안 대략 900 ~ 1,000 마리의 들쇠고래를 그네들 말로 '들쇠고래 사냥'쯤 되는 grindadráp 동안 처리하는 거죠.



오해를 덜기 위해 미리 말하자면, 들쇠고래는 멸종 위기에 놓인 종은 아니에요. 게다가 저 섬 주민들은 들쇠고래의 고기로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냥은 공히 저 공동체가 주관하고 거기서 얻은 고기는 그네들의 식량으로 쓰이는 거죠. 그리고 저 '사냥' 자체가 공동체의 문화와 정체성에 워낙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여타 환경단체들도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혹은 못하고) 있고 말입니다. 말마따나 수백년을 이어온 일이니 말이에요.

한데, '환경' 문제는 다른 쪽에서 일어나고 있더라는 겁니다. 저 섬의 공동체는 대략 5,000명 쯤 되는 데, 이네들이 언제부터인가 건강을 잃어가고 있더라는 거죠. 들쇠고래들에 축적된 수은 함량이 늘어나게 되면서, 그네들을 먹거리 삼던 저 동네 양반들도 수은 중독의 위험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더라는 겁니다. 아이들 중에서도 수은의 영향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구요. 공동체의 존립이 위험해져가는 상황이더라는 겁니다.

그래도 저 곳에 있는 양반들은 매년 '사냥'을 합니다. 그네들의 전통이자 그네들의 먹거리니 말이죠. 아마 더 이상 공동체가 지탱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도 '사냥'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있을 겁니다. 문화, 특히 저렇듯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 문화의 관성이란 건 때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크니 말이죠. 몇백년을 이어온 안전한 식문화라는 게, 겨우 몇 십년만에 그네들에게 독이되는 식문화로 바뀌었다는 걸 인정하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파로에 섬 주민으로 남기위해, 파로에 섬 주민으로서 '전통'을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은 고래심줄만큼 질기게 계속 되지 싶습니다.

파로에 섬의 '사냥'에 대해서는 위키페디아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PBS에서는 The Faroe Islands - Message from the Sea라고 파로에 섬의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온라인에서 제공하고 있으니 둘러보실 분들은 찾아보시구요. 글쎄요. 저 공동체가 아픔을 못이기고 '사냥'을 그만두는 게 먼저일까요, 아니면 수은중독으로 개체수가 줄어든 들쇠고래 때문에 '사냥'을 할 수 없게 되는 게 먼저일까요. 이건 어느 쪽이든 지는 게임이로군요. (Earth First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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