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5일 금요일

600년 고도 서울엔 역사가 없다

부다페스트는 확실히 서울보다 볼 만했다. 하기야 유럽에 서울만 못한 수도가 어디 있으랴. 서울에선 도대체 과거를 읽을 수 없지 않은가. 역사를 지워버린 600년 고도가 서울이다. 부다페스트에선 적어도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쉬고 있었다.

- 고종석, [도시의 기억] 중에서

외국에 살다보면 '한국인의 글'이 그리울 때가 있다. 웬지 서점에 가서도 '원서'보다 비싼 번역서에는 아까운 마음에 손이 가질 않는다. 안타깝게도 밀도깊은 한국인의 마음과 시각을 접할 기회는 서점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일단은 지금 내가 사는 삶이 그리 좁고 짧기 때문이고, 한국 서점에 들를 기회가 몇 달에 한 번일 정도로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이 이번 걸음에선 마음에 드는 책들을 집어들 수 있었다. 작은 기쁨이다.

고종석은 내가 그리 고민하지 않고 책을 집어드는 몇 안되는 저자 중 하나다. [도시의 기억]은 거기에 '도시'라는 기분좋은 울림을 가지고 있던 책이었고. 기분좋게 책을 골라들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반절을 넘어 넘겼다.

우연이었을까. 동대문 운동장을 헐고, 다시 서울시 청사를 헐어내려는 서울시의 행정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날, 저 구절을 만났다. '새 것'이, 인공적인 것이,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이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서 차지하는 영역은 얼마나 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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